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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SHINGTON

  • Posted by 홍기용 Count: 1009 08/07/13
라디오한국 서정자 사장, "서북미 첫 방송박물관 건립이 꿈"

라디오한국 서정자 사장님의 초대로 자택에서 저녁을 함께 하고 수천점의 카메라, 영사기,라디오,음반...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여러가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일일이 개인 스스로 모았다는 것이 열정과 그 일의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 한 일이었습니다.


잠시 창밖을 보며 그분의 젊은시절 하나를 얻기위해 먼 길을 왕래함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알수록 멋있는 분 인것 같아 인터넷을 찾아보다 그분의 멋진 삶의 글을 올립니다.


참 좋은분 만나서 행복했습니다.(가슴깊이 느낀점도 컸습니다.) 

라디오한국 서정자 사장, "서북미 첫 방송박물관 건립이 꿈"  
 
   
 
 
 
서정자 라디오한국 사장이 반세기에 걸친 지나온 방송사업을 회고하고 있다.

 

시애틀 한인들이 애청하는 라디오한국의 서정자 사장은 미국 유학생활을 하던 1965년 6월 12일 LA에서 미주 첫 한인방송인 한미방송을 시작한 미주 한인방송의 산 증인이다. 서 사장에 따르면 당시에 개국한 한미방송은 전세계 첫 한인 방송국이다.

서 사장은 "그 당시는 토요일 30분을 빌려 시작했고 그다음에는 2시간을 빌려 방송을 내보냈다. 그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하루 16시간 방송으로까지 확대했다. 그때는 공중파가 아닌 일종의 유선방송이었다"고 말했다. 후에 가수 이장희씨도 합류해 함께 방송일을 하기도 했다.

시애틀은 1995년 5월에 직원들과 함께 관광차 처음 방문했다. 퓨젯 사운드의 아름다운 풍경에 푹빠진 서 사장은 이곳에 한인방송국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시애틀로 이주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시애틀로 거처를 옮긴 서 사장은 하루에 10시간씩 방송시간을 사용하기로 하고 라디오한국을 설립했다는 것. 미국 소니와 계약을 통해 한국에 TV를 수출할 수 있는 판권을 획득, 이로부터 얻은 수입이 방송국 운영의 기반이 됐다.    

1996년 방송을 위한 정식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1997년 10월에 서북미 첫 한인방송국인 라디오한국의 시험방송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IMF라 불리는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소니 TV를 한국에 판매하는 사업이 막히면서 수입이 끊기고 동업을 약속했던 투자자도 손을 들어 초기부터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서 사장은 초기에는 광고수입이 없어 LA에 보유하고 있던 방송장비 등 자산을 팔아 조달했으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방송국 매각을 고려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를 포기하지 않고 경영에 매진, 오늘날까지 서북미 유일의 한인 라디오방송을 유지하고 있다.

1965년 LA에서 세계 첫 한인방송을 시작할 당시 서정자 사장의 앳된 모습.

 

지금까지 방송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경우는.

 

페더럴웨이시와 대립할 당시가 가장 힘들었다. 단독건물을 렌트해 사용할때 수입에 비해 렌트비가 너무 비싸서 힘들었는데, 마침 대지 3에이커의 저렴한 주택이 거주하면서 비즈니스도 가능한 용도로 나와 이를 매입, 방송국을 이전했다. 시에 방송국 허가규정은 없었지만 관계자로부터 구두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나중에 시에서 상업지역이 아니라 방송을 할 수 없다고 통보, 시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그때 라디오한국 청취자들이 들고 일어나 불과 2~3일만에 3,300여명이 방송허가 청원에 서명하자 시에서도 놀랐다. KOMO-TV 등 주류방송에서도 지원하겠다는 뜻을 알려왔으나 거부했다.

 

이런 와중에 일간지, TV방송 등 한인 언론사들이 페더럴웨이시와 싸움을 하지 말고 철수하라는 집단적인 압력까지 넣어 너무 힘들어 울기도 많이 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방송국을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방송국 부지를 판지 한달만에 상업지구로 용도가 변경됐다. 그 자리에 크리스챤 페이스 센터가 들어서면서 상업지역으로 용도가 변경된 것이다. 나는 그곳에 야외극장까지 세우겠다는 큰 꿈을 갖고 있었지만 눈물을 머금고 철수했다.

보람이 있었을 때는.

나는 31살에 홀로 된 후 지금까지 방송을 삶으로 살고 있다. 한 청취자는 어머니가 방송이 생긴 후에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우울증이 있는데 방송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광술 전 시애틀한인회장도 홀로 계신 어머니가 방송을 듣느라 자신의 전화까지 받지않을 정도로 재밌고 각종 정보를 얻는다고 말해 큰 보람을 느꼈다. 병석에 누워있는 한인이나 시각장애인 등이 방송을 좋아했다. 평생 사명감으로 방송을 해왔다.

라디오한국은 시애틀지역 유일의 아시안 라디오방송국이다. 동시에 페더럴웨이 유일의 라디오방송이다. 시와 싸울 때 한인 매체들의 압박을 받고나서 활자매체를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간지 미디어한국을 창간하는 계기가 됐다.

요즘도 직접 방송을 하시는지.

매일 2시간씩 방송을 한다. 한혜진이라는 예명으로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진행하는 '차 한잔의 대화'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방송을 하는 목소리는 상당히 젊기 때문에 대부분의 청취자들이 내가 직접 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미국에서 첫 한인방송을 하게된 동기는.

이화여대 재학중 KBS 라디오 성우 근무를 시작하면서 연출자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1964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에는 유학생은 거의 예외없이 배를 타고 미국에 오던 시절이었는데, 나는 다행히 홀트를 통해 입양아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고 시택공항에 내려 아이들을 양부모에게 안겨주고 LA로 갔다. 그때는 논스톱이 없어 일본을 거쳐 하루를 자고 미국으로 왔다. 

 

자신에 관한 기사와 그동안 받은 수많은 감사패 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KBS 출신인 나하고 문화방송(MBC)에 다니는 대학친구와 의기투합해서 1965년에 방송을 처음 시작했으나 결국 그 친구는 포기, 혼자 방송사업을 강행했다. 미주뿐만 아니라 세계 첫 한인방송이었다. 초창기에는 한국에서 자료를 얻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몇 일만에 비행기가 한국신문을 싣고 오면 그것을 바탕으로 뉴스를 전했다. 건물 꼭대기에 단파수신기를 놓고 국제방송국에서 쏘는 단파방송으로, 잘 들리면 녹음해서 뉴스를 내보내고 잘 안들리면 듣고 써서 뉴스를 하던 시절이다. 갖은 고생을 하며 방송국을 운영해왔지만 결국은 나중에 이후락씨 아들에게 방송국을 넘겼다. 

수년전부터 K-팝 행사를 개최해오고 계신데.  

LA폭동도 따지고 보면 서로의 문화적인 차이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한인들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높은 관심과 함께 성공리에 개최한 K-팝 1회 대회 참가자들이 동아리모임을 갖고 노래방에서 함께 한국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레이크우드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노래방의 경우 고객의 70%가 외국인이라고 듣고 있다. 노래방에서 연습하고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다. 

 

취미생활이나 여가는 어떻게 보내시는지.

원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다양한 취미생활을 하고 싶지만 광고방송 녹음, 성우 트레이닝, 프로그램 진행, 방송국 운영 등 업무에 매달리다 보니 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 지금까지 미국이민 생활이 반세기가 되지만 여행을 다녀본 기억이 거의 없다. '라디오한국과 함께 떠나는 크루즈' 프로그램 때문에 알래스카 크루즈여행을 다녀온 것이 전부다. 방송은 연휴에는 더 열심히 해야한다. 직원이 휴가를 가면 대타로 뛰어야 하기 때문이다. LA에서도 그랬지만 시애틀에 와서도 가본 곳이 없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앞으로 라디오한국을 어떻게 운영하고 싶으신지.

요즘 생각으로는, 교포를 위한 이러한 방송사업을 하고자 하는 재력가가 있다면 양도할 의사도 있다. 하지만 나의 마지막 꿈은 방송국과 함께 첨단 음향, 조명 시설을 갖춘 공개홀과 방송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이다. 의욕도 있고 경험도 있지만 재력이 부족해 항상 안타깝다. 현재 워싱턴주에는 방송박물관이 없다. 내가 평생 모은 수천점의 카메라, 방송장비 등을 전시하는 박물관을 짓고 싶다. 개인이 소장한 장비와 함께 코모, 폭스 등 시애틀지역 방송사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도 마련할 계획이다.

현재 주로 집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전시품은 준비가 된 상태이지만 아직 이를 전시할 건물이 없는 상태다. LA는 이민역사박물관 건립을 위해 시에서 부지와 함께 건물도 제공했지만 전시할 물건이 없었다. 시애틀은 정반대의 상황이다. 방송박물관을 설립해 시애틀의 명소로 만들고 싶다. 이에 관심있는 독지가들의 동참을 기대한다.

방송국 내 한 스튜디오에서 자신이 아끼는 LP판을 보여주는 서정자 사장.

 

인터뷰 = 김정태 편집인 editor@joyseattle.com

(c)조이시애틀뉴스(www.joyseatt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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